설경구X홍경X류승범 넷플릭스 '굿뉴스' ...한국 관제사의 기지가 129명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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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브이오알 댓글 0건 조회 184회 작성일 25-10-21 18:08본문
(서울=브이오알) 브이오알 Editor - news@vor.kr
1970년 일본 극좌파 9명, 여객기 납치해 북한행 시도
채희석 관제사 평양 사칭해 김포공항 유도, 승객 전원 무사 구출
사진=넷플릭스
넷플릭스 영화 굿뉴스가 공개되면서 1970년 일본 극좌파의 여객기 납치 사건이 재조명되고 있다. 승객 129명의 목숨을 건 이 사건에서 한국 공군 관제사 채희석 중위의 기지로 인질 전원이 무사 구출됐다. 영화는 일본항공 351편 공중 납치 사건, 일명 요도호 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1970년 3월 31일 일본 공산주의 동맹 적군파 조직원 9명이 승객 129명을 태운 도쿄발 후쿠오카행 여객기를 납치했다. 이들은 일본도와 권총, 폭탄 등으로 무장하고 승객들을 포박한 뒤 처음에는 쿠바 아바나행을 요구했으나 연료 부족으로 후쿠오카 이타즈케 공항에 착륙했다.
이후 납치범들은 북한 평양행을 요구하며 다시 이륙했다. 이때 공군 제7항로보안단 소속 관제사 채희석 중위가 평양 관제탑을 사칭해 김포국제공항으로 유도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28세였던 채 중위는 갑자기 100여 명의 승객 목숨을 떠안게 된 상황에서 평양과 김포공항의 주파수를 바꿔치기하는 기지를 발휘했다.
비행기가 38선을 넘자 납치범들은 북한 영공에 진입했다고 오인했다. 하지만 채 중위의 유도로 여객기는 서해 한가운데를 거쳐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김포공항에 착륙했다. 한국 당국은 대대적인 위장 작전을 펼쳤다. 공항에 인공기를 게양하고 태극기를 내렸으며, 군인들에게 인민군 복장을 입혔다.
김포공항에 착륙한 요도호. 사진=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79시간의 긴 협상이 시작됐다. 한국 정부에서는 정래혁 국방부 장관, 백선엽 교통부 장관, 박경원 내무부 장관이 협상에 참여했다. 일본에서도 야마무라 신지로 운수성 정무차관과 하시모토 도미사부로 운수성 장관이 서울에 도착해 협상에 나섰다.
결국 승객 전원을 석방하는 대신 야마무라 신지로 차관이 교환 인질로 투입됐다. 4월 3일 오후 6시 5분, 납치범 9명과 조종사 3명, 야마무라 차관을 태운 여객기는 김포공항을 이륙해 1시간 반 후 북한 미림 비행장에 도착했다. 다음 날 야마무라 차관과 조종사들은 무사히 일본으로 귀국했다. 납치범들이 소지한 무기는 모두 장난감으로 밝혀졌다.
영화와 실제 사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홍경이 연기한 서고명 중위가 납치범들과 직접 대면하거나 설득을 시도하는 장면들은 모두 영화의 창작이다. 실제 채희석 중위의 활약은 비행기를 김포공항으로 유도한 것까지였고, 납치범들과의 실제 교섭은 일본 대표단과 한국 측 장관들이 맡았다. 설경구가 분한 아무개의 존재와 작전 관여 역시 영화적 창작이다. 또한 실제 납치범 9명 중 여성은 없었으며, 북한으로 망명한 이들 중 요시다 킨다로를 제외한 8명은 북한 체류 중이던 일본인 여성들과 결혼했다.
그러나 정작 영웅적인 역할을 한 채희석 중위는 한동안 알려지지 않았다. 당시 정부가 요도호 착륙은 기장의 자의에 의한 것이라며 한국의 개입을 부정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채 중위에게 요도호에 대해 언급하면 총살당할 수도 있다고 협박했으며, 그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 군적에서 지우고 업무에서도 배제시켰다. 결국 채 중위는 1년여 만에 반강제로 전역해야 했다. 채 중위가 요도호 사건을 가족에게 이야기한 것은 한참이 지난 63세가 되어서였다.
이 사건으로 한국은 인질 구출 성공으로 일본의 호감을 얻었으며 이후 한일 외교 관계에서 유리한 입지를 확보했다. 현재까지 생존한 납치범 4명은 북한에 거주 중이며 국제 지명수배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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